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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 기고] AI 시대 창업국가, 새 구호보다 ‘커널’부터 고쳐야

10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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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동아]

스타트업을 세우고 운영하는 데는 3년이 걸렸지만, 문을 닫는 데는 30분이면 충분분하다. 폐업 신고서를 내고 세무서를 나서던 한 창업 대표를 정작 놀라게 한 것은 그 속도가 아니었다.


창업할 때는 액셀러레이터, 투자사, 특허사무소, 지원기관 담당자까지 만날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문을 닫을 때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기 회사가 왜 실패했는지 누구보다 정확히 안다. 하지만 그 3년치 배움은 지금 어디에도 쓰이지 않고 있다.

AI 시대의 창업국가는 바로 이 장면에서 출발해야 한다.


세 번의 선언, 되풀이된 결말

대한민국은 이미 세 번 창업국가를 꿈꿨다. 1997년 벤처특별법, 2014년 창조경제혁신센터, 2019년 제2벤처붐이다. 그리고 올해 정부는 ‘국가창업시대’를 내걸고 네 번째 선언에 나섰다.


앞선 세 번의 선언은 모두 진심이었고, 한때는 목표에 가까이 다가서기도 했다. 그런데도 매번 같은 결말이 되풀이됐다. 설계자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구조 때문이다.


컴퓨터 운영체제에 빗대면 이해가 쉽다.

지난 30년간 우리가 바꿔온 것은 대부분 ‘애플리케이션’, 곧 개별 산업 정책이었다.

반도체 대책, 바이오 육성안, AI 기본계획은 정권마다 새로 깔리고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이 정책들이 공통으로 올라타는 ‘커널’은 거의 그대로다. (운영체제에서 커널은 '운영체제의 정체성'이라 할 만큼 핵심적인 기술 토대다.) 단년도 예산, 집행률 중심 평가, 실패에 대한 감사, 1년마다 바뀌는 순환보직이라는 커널. 좋은 프로그램을 그 낡은 커널 위에 계속 설치해 온 셈이다.


창업생태계가 열매를 맺기까지는 7~10년이 걸린다. 그런데 정권의 시계는 5년, 담당자의 시계는 1년이다. 이 시차가 줄지 않는 한 모든 정책은 결실을 보기 전에 주인이 바뀐다.


창업지원사업 행사에 참석한 많은 창업자들 / 출처=넥스트챌린지
창업지원사업 행사에 참석한 많은 창업자들 / 출처=넥스트챌린지

말라가는 초기 투자, 버려지는 실패 경험

숫자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2025년 벤처투자는 반등했지만, 업력 3년 이내 초기 기업 가운데 투자를 받은 곳은 1년 새 749곳에서 327곳으로 절반 아래로 줄었다.

100억 원 이상 대형 거래가 전체 투자금의 93%를 차지했다. 초기 투자가 마르면 3년 뒤에는 투자할 성장기업 자체가 사라진다.


실패 경험도 마찬가지다. 한국 벤처 창업가의 평균 실패 경험은 1.3회로, 미국·중국(2.8회)에 크게 못 미친다. 반면 재창업 기업의 5년 생존율은 73.3%로 전체 창업기업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한 번 실패해 본 사람이 다시 하면 훨씬 잘할텐데, 우리는 다시 하지 않는다. 국가가 수조 원을 들여 길러낸 경험을 매년 버리고, 이듬해 처음부터 다시 예산을 쓰는 것이다.



커널을 고치는 다섯 가지 처방

그렇다면 네 번째 선언에서는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새 구호나 새 조직보다 커널 자체를 고치는 일이 먼저다.

첫째, 정책 부검을 의무화하자.

창업 지원 사업이 끝나거나 개편될 때 성과와 실패 원인을 담은 평가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고, 새 정책을 설계할 때는 직전 유사 정책의 보고서를 참조했음을 사업계획서에 명시하도록 하자.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부검하지 않으면 사인을 알 수 없고, 사인을 모르면 같은 병으로 또 쓰러진다.


둘째, 시작한 사람이 끝을 보게 하자.

핵심 창업정책 담당자만큼은 최소 5년간 한자리에서 일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성실한 개인에게 기대는 제도는 그 개인이 자리를 옮기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셋째, 실패를 기록하는 나라가 되자. 폐업한 창업가의 경험을 데이터로 남기고, 그 기록이 재도전의 자격이 되도록 해야 한다.

AI 시뮬레이션은 실패할 때마다 로그를 남기기에 열세 번째 시도가 열두 번째와 다를 수 있다. 국가도 실패를 기록해야 다음 도전을 다르게 설계할 수 있다.


넷째, 정부는 규제자에서 촉매자로 바뀌어야 한다.

우리 규제의 문제는 대개 '안 된다'가 아니라 '되긴 하는데 오래 걸린다'는 데 있다.

안전 기준을 낮출 이유는 없다. 다만 시험 설비를 늘리고 기준을 미리 공개하며, 다음 기술에 대한 규제 로드맵을 먼저 그려 통과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야 한다.


다섯째, 서울의 바통을 이어받을 도시를 키우자.

서울은 8년 만에 글로벌 창업생태계 순위 54위에서 8위권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심장이 하나인 나라는 오래 뛰지 못한다.

연구단지의 대전, 숙련된 손기술의 대구, AI 컴퓨팅이 돌아가는 광주, 정교한 중공업 현장의 울산은 저마다 다른 자산 위에 서 있다.

같은 간판을 나눠 달 것이 아니라 도시마다 자기만의 지문을 살려야 한다. 화려한 건물보다, 그 안에서 인재와 자본, 네트워크가 자주 마주치게 하는 일이 먼저다.



“로봇이 실수하면 누가 사과하나요?”

마지막은 교실이다. 필자가 설립, 운영하는 '넥스트챌린지스쿨(NCS)'에서 한 학생이 이렇게 물었다.

“로봇이 실수를 하면, 누가 사과해야 하나요?”


필자는 그 자리에서 답하지 못했다. 다만 이 질문에 사회가 답하는 방식이 곧 창업국가로 가는 시험대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실수를 감추고 책임을 피하는 사회에서는 사람이든 로봇이든 다시 도전할 수 없다. 정답을 외우는 아이가 아니라, 질문하는 아이를 기르는 교육, 실패를 감점이 아니라, 성장의 증거로 보는 평가가 AI 시대 인재 정책의 출발점이다.


넥스트챌린지스쿨의 미네르바 대학 교수 현장 수업 장면 / 출처=넥스트챌린지
넥스트챌린지스쿨의 미네르바 대학 교수 현장 수업 장면 / 출처=넥스트챌린지

우리에게는 다른 창업국가들이 갖지 못한 자산도 있다. 문화가 먼저 세계의 마음을 열고, 그 신뢰 위에 산업이 올라탄 나라라는 점이다.

화장품과 식품 앞에서 활짝 열린 그 문이 로봇과 바이오, AI 앞에서는 아직 문틈만큼 열려 있을 뿐이다. 그 문틈을 넓히는 일은 이제 창업가들의 몫이다.


선언은 정권과 함께 사라지지만, 기록은 선언보다 오래간다. 네 번째 선언이 다섯 번째 선언을 부르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우리가 어디서 넘어졌는지부터 정직하게 적어야 한다. 창업국가는 구호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많은 나라다.


김영록 (재)넥스트챌린지 대표

현재 (재)넥스트챌린지 대표,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이사장,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한양대학교 창업대학원 IAB 교수.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에서 석사, 한양대 경영컨설팅대학원에서 박사 과정 수료. ‘탈패턴 인재’ 양성 철학을 토대로 AI와 인간이 공존하는 학교 ‘넥스트챌린지스쿨’ 설립. [변종의 늑대], [진격의 늑대], [미지의 늑대], [탈패턴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등의 저자.



정리 / IT동아 이문규 (munc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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